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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엄마 박완서의 부엌: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 / 부엌에서 떠올리는 엄마에 대한 기억

by 독서하는 하루 2024.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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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엄마 박완서의 부엌: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
저자: 호원숙
주제분류: 음식 에세이
출판연도: 2021

박완서 작기님의 산문집 제목이기도 하고 박완서 작가님이 생애 마지막까지 거주하였던 노란집 부엌 한 켠에서, 이제는 맏딸 호원숙 작가님이 요리를 합니다. 음식과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연결되고 음식과 박완서 작가님 작품 속 한 구절이 연결됩니다.

 

1. 총평

 아홉 번째로 읽는 띵시리즈입니다. 작가의 취향을 알 수 있었던 책도 있었고, 음식에 대해 새로운 정보를 알 수 있었던 책도 있었고, 그 책을 계기로 좋아하는 음식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대체로는 가볍게 읽는 에세이, 새로운 정보를 얻는 책으로 여겼는데 《엄마 박완서의 부엌: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은 진한 여운이 남는 문학 작품이었습니다. 
 호원숙 작가님는 박완서 작가님의 맏딸입니다. 호원숙 작가님의 담담하면서도 섬세한 문체가 좋았습니다. 담담하게 음식 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음식의 맛을 칭찬하고, 음식에 대한 추억을 꺼내놓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담백하게 말하는데 그리움이 충분히 설명됩니다. 박완서 작가님의 작품이 많이 인용되어 다음에 읽을 책 리스트가 늘어났습니다. 
 바로 이전에 《식탁 독립: 부엌의 탄생》을 읽었는데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 같다던 에디터의 말에 크게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이 책이 더 <리틀 포레스트> 같습니다. 제철음식을 해먹으며 계절을 보내고 부엌에서 엄마를 떠올리는 혜원의 모습과 책 속 호원숙 작가님의 모습이 겹쳐 보였습니다.
 

2.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

 프롤로그 <엄마의 부엌, 그 기억>을 비롯하여 여러 챕터에서 작가는 음식에 대한 추억과 어머니의 작품으로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표현합니다. 담담하게 서술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묘사하고 그리움이 뚝뚝 묻어나는 표현들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엄마가 나를 낳았던 충신동 한옥집의 부엌은 어둑하고 좁았다. 부엌에까지 전등불을 달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부엌 뒷문을 열면 훤하게 학교 마당이 보였다. 인가도 나지 않은 작은 학교였지만 어린 눈에는 마냥 광활해 보였다. 그리고 부엌 뒤켠으로 장작이 쌓여 있었다. 연탄이 나오기 전에는 나무장에 가서 나무를 사다 쌓아놓으면 부잣집 같았다. 그 풍요로웠던 장작의 냄새가 피어오른다. 장작불을 지핀 아궁이의 큰 솥에 메주콩을 삶는 냄새, 작은 숯불화로에 섭산적을 구웠던 냄새가 아직도 코끝에 선명하다. 그건 마치 왕가의 음식이었지. 엄마는 집에서도 한복 치마저고리 차림에 광목으로 된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현대문학』이나 『사상계』를 보면서 잠시 누워 있던 엄마는 얼마나 아름다웠는지(p16)

 

어머니가 떠오르는 그리운 장면은 거의 다 부엌 언저리에서, 밥상 주변에서 있었던 시간이었다. 나 자신도 지금까지 그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하다. 살아 있음으로 영감이 떠오르고 손을 움직여 다듬고 익혀 맛을 보는 기쁨을 어디에 비길 수 있을까. (p19)

 

뜨거운 냄비 앞에서 주걱을 젓고 있던 어머니의 모습은 또렷이 생각난다. 나누어주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손수 만들던 그 깔끔한 성정이 생각난다. 6월의 괴를 넘어가던 것을 힘들어 했던 어머니, 뜨거운 솥 앞에서 땀을 흘리던 엄마, 그러나 가벼운 사랑으로 살구잼을 나누어주시던 어머니의 손길과 눈길이 그리워진다. (p27)

 

2. 계절감을 느낄 수 있는 표현들

 살구나무와 매실나무에서 떨어진 열매로 잼을 만드는 모습, 한여름이 지나면 나오는 늙은 오이 노각으로 초고추장 무침을 하여 밥을 비벼 드시던 외할머니의 모습, 김장철의 동치미 등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계절감을 한껏 느낄 수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 환절기마다 불평을 하고 계절마다 옷장 정리의 수고로움이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이럴 때가 사계절의 소중함과 축복을 소중하게 여기게 되는 순간이에요. 
 

6월이 중순에 다다르면 이파리와 구별되지 않던 녹색 열매가 누렇게 익어 하나씩하나씩 떨어진다. 갓 떨어진 살구를 입에 넣으면 새콤하고 달콤한 풍미, 부드러우면서도 물컹대지 않는 열매의 향취가 즐겁다. (p21)

 

그때 머릿속에는 민어를 다루던 할머니의 그 의식과도 같았던 장면이 떠올랐다. 여름에는 꼭 한 번쯤 민어를 먹어야 한다는 단호한 표정이 떠올랐다. 여름날 애호박과 고추장을 넣은 달큰했던 민어탕, 그리고 숯불에 구웠던 민어구이와 참기름장에 찍어 먹었던 민어회, 빨랫줄에 말린 어란까지 줄줄이 기억으로는 떠올랐지만 실제로 민어를 맞닥뜨려보긴 처음이었다. (p73)

 
 제철음식을 먹으며 계절을 느끼고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잖아요. 저에게는 가을의 꽃게가 그런 존재인 것 같아요. 가을 꽃게철이 되면 수요일 아파트 장이 설 때 엄마가 꽃게를 사다가 꽃게탕을 끓여주셨어요. 수요일 저녁은 아빠도 늘 일찍 퇴근하셔서 함께 꽃게탕을 먹었고 같이 열심히 꽃게 살을 발라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수요일의 저녁의 꽃게탕은 가을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음식이었죠.
 

3. 음식에 대한 묘사

 요리하는 방법에 대한 담백한 묘사가 인상적이었어요. 겉멋이 들지 않은, 우리나라 음식의 소박함을 담은 그런 음식을 하는 장면이, 어머니의 정성이 담긴 집밥을 하는 장면이, 마치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처럼 그려졌어요.

추석을 앞두고 조용히 나박김치를 담근다. 알배추의 노란 속잎사귀를 나박나박 썰고 무도 얄팍하게 나박나박 썰어 소금을 살살 뿌려둔다. 푹 절 정도가 아니라 그저 숨이 좀 죽을 정도면 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미나리와 쪽파를 정히 다듬는 것. 마늘과 생강은 편으로 얇게 썰어놓고 배를 나박나박 썬다. 양파도 1센티 두께로 잘라놓는다. 무와 배추가 숨이 좀 죽으면 재료를 다 넣는데 이때 미나리와 쪽파를 위에다 얹는다. (p36)

 

그래도 소면으로 만든 비빔국수는 좋아한다. 고추장과 간장과 설탕과 참기름, 그리고 다진 고기와 잘 익은 김치(열무김치도 좋다.) 쫑쫑 썬 것과 김치 국물의 조화.아, 국수 삶는 요령도 무척 중요하다. (p122)

 

우선 족발을 깨끗이 씻어 애벌로 삶아내고 남아있는 털을 벗겨내야 한다. 그리고 다시 푹 삶고 나서도 털이 있을 수 있는데 그건 불에 살짝 그을리면 타면서 깨끗해진다. 아무런 첨가물이 없어도 돼지 냄새나 누린내 같은 것이 나지 않는다. 양파를 숭덩숭덩 어 간장식초장에 같이 먹으면 정말 맛이 좋다. 새우젓과 같이 먹어도 물론 좋다. (p171)

 
 음식의 맛을 묘사하는 부분들도 좋았어요. 전혀 호들갑을 떨지 않는 표현들인데도 작가가 느끼는 미각의 즐거움이 고스란히 전해진다랄까요.

맛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았다. 계피 냄새가 은은히 풍기고 아삭아삭한 설탕이 뿌려진 도너츠의 감미로운 맛, 이따금 온기가 채 식지 않은 고로케의 맛은 일품이었다. 요즘도 가끔 유명하다는 집의 도너츠나 고로케를 먹어보지만 언제나 내 입맛에는 그때보다 못하다는 느낌이다. 당시 입시를 앞둔 아이는 한 개 더 먹을 수도 있었다. 우리는 그 온기가 식기 전에 달려온 아버지를 사랑했다. (p92)

 

차가운 음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도 그 붉은 생고기의 신선함과 양념맛에 감탄하고 계속 탐닉했다. 단순히 달콤한 것만도 아니었다. 차가우면서도 붉은 기운이 오히려 몸을 따뜻하게 해준다고 할까 이런 것을 미식이라고 하나? (p138)

 
 

4. 기억하고 싶은 표현들

그러나 얌전히 담가놓으면 명절을 준비하는 서곡처럼 내 마음에 울림이 있다. 미나리의 연둣빛이 주는 일깨움이 있다. (p38, 나박김치를 담그는 자신의 마음에 대한 생각)

 

아무 맛이 없지만 곰삭은 무의 희미한 맛이 속을 가라앉힌다. (p70, 동치미)

 

경주는 숱하게 많이 왔던 곳이고 올 때마다 고도의 안온함과 웅숭깊은 현안함에 푹 싸이게 해주었던 곳이지만 이번에는 음식으로 새로운 감탄을 하게 만든다, (p138)

 

음식을 하면서 세월이 간다. 음식을 기억하며, 음식을 만들며, 그 음식을 먹으며, 생명을 이어간다. (p157)

 

5. 새롭게 알게 된 것

1) 구라중화(九羅重化): 아홉 겹의 비단 속에 감춰져 있는 꽃. 글라올러스를 음차해서 한자식으로 표현한 말. (p14)

지난해 살구가 누렇게 익어 뚝뚝 떨어질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잎이 다 떨어졌다. 마당에는 잎이 다 떨어진 감나무에 감이 몇 개 달려 있을 뿐이다. 땅이 얼기 전에 글라디올러스 구근을 파내어 갈무리를 해두었다. 어머니와 나는 글라디올러스가 피면 구리중화라고 하며 김수영의 시를 다시 꺼내 읽기도 했다. 마당의 뿌리 하나에도 어머니와 나누었던 이야기와 시가 배어 있다. (p14)

 
 2) 백합은 꽃이 하얗다는 뜻이 아니라 하얀 뿌리가 비늘처럼 켜켜이 모여 있어 붙은 이름이다. (p14) 
 3) 편수는 여름 만두다. 애호박을 썰어서 소금에 살짝 절인 후 꼭 짜고 고기와 함께 소를 만드는 만두이다. 여름에 배추나 배추김치가 계절음식이 아니기에 대체하는 것이다. (p46) 부암동의 '자하손만두'에서 편수를 참 맛있게 먹었었는데 편수가 여름 만두였구나.
 4) 잣죽 레시피: 불려놓은 쌀과 잣을 거의 동량으로 넣고 물은 쌀의 다섯 배쯤 넣어 믹서에 간다. 믹서기에 간 것으로 죽을 끓이면 되는데 다 될때까지 저어주는 게 중요하다. 작가는 좁쌀처럼 된 쌀 알갱이가 익어서 투명해질 때까지만 끓인다. 너무 많이 갈아져서 풀처럼 된 것보다 쌀 알갱이가 부드럽게 씹히는 상태를 좋아하는 건 작가 개인의 취향. (p108)
 5) 오가피는 두릅과 비슷하기도 하지만 부드럽고 향긋하다. (p125)
 6) 배틀하다: 힘이 없거나 어지러워 몸을 잘 가누지 못하고 요리조리 쓰러질 듯이 걷다

미끈거리지만 배틀하고 부드러운 맛. (p154, 대구 곤이의 맛)

 
7) 느티떡: 사월초파일 계절음식이다. (p164)
 

6. 책 속의 책

 1)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아쿠타가와) : 작가가 제목이 참신하다고 느꼈던 일본 소설
 2) 《그 여자네 집》 (박완서)

꽈리가 거기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건 풀숲이 누렇게 생기를 잃고 난 후였다. 익은 꽈리는 단풍보다 고왔고, 아닌 게 아니라 초롱처럼 앙증맞았다. 그러나 그맘때면 붉게 물든 감잎도 더 고운 감한테 자리를 내주고, 들에서는 고추가 다홍빛으로 물들 때였다.

「그 여자네 집」에 나오는, 자주 꺼내보는 구절이다. 바로 이 늦가을의 무는 어느 때보다 깊고 달큰한 맛이 우러나는 게 아닌가. (p33)

 
 3) 《창밖은 봄》 (박완서)

창가에 미나리가 돋아나면 겨울에도 봄을 느낄 수 있었지. 그러고는 「창밖은 봄」 같은 작품도 쓰셨을지도 모른다. 나박김치를 담그며 미나리에 대한 기억이 줄을 잇는다.

자고 깨면 춥고, 자고 깨면 여전히 춥건만 설마 내일은 풀리겠지, 설마 겨울 다음엔 봄 안 올까, 하는 끈질긴 낙천성만이 그들의 것이었다. (p37)


 4) 《나목》 (박완서)

개성 만두는 생김새부터가 유머러스하거든요. 얄팍하고 쫄깃하게 잘 주무른 만두 꺼풀을 동그랗게 밀어서 참기름 냄새가 몰칵 나는 맛난 만두소를 볼록하도록 넣어서 반달 모양으로 아무린 것을 다시 양끝을 뒤로 당겨 맞붙이면 꼭 배불뚝이가 뒷짐 진 형상이 돼요.

어머니의 첫 소설 『나목』 속에 나오는 구절이다. 소설 속의 태수가 맛도 없는 것을 하도 맛나게 먹길래 개성 음식 이야기를 자랑처럼 늘어놓는 장면이다. 음식 이야기가 리드미컬하고 생생하다. (p41)

 
 5) 《호미》의 <음식 이야기> (박완서)

나는 맛있는 것을 먹고 싶은 건 참을 수 있지만, 맛없는 건 절대로 안 먹는다.

어머니의 산문집『호미』의 「음식 이야기」에 나오는 구절이다. 읽을 때마다 미소가 절로 번진다. 식구들에게 절대로 맛없는 것을 먹이지 않았던 어머니 생각에 웃음이 나오면서도 고개를 숙이게 된다. (p58)

 
 6) 《그 남자네 집》 (박완서)

『그 남자네 집』의 그 장면이 아니었다면 기어코 엄두를 내기 힘들었으리. 나는 도마 위에서 식칼을 들고 해부를 하기 시작했다.
(중략)
민어의 몸은 횟거리와 찌갯거리, 구이용으로 나뉘어졌다. 대가리가 워낙 컸으므로 회와 구이용으로 좋은 살을 발라내고 남은 뼈와 살까지 합치니까 큰 냄비로 하나 가득했다. 곰국을 끓일 때나 쓰는 큰 솥에다 애호박 썰어 넣고 고추장 풀고 끓인 민어찌개 맛은 준칫국과는 또 다른 달고 깊은 맛이 있었다. 민어찌개 끓일 때는 보리고추장을 써야 하고, 회 먹을 때 쓰는 초고추장은 찹쌀고추장으로 만들어야 하고, 민어구이는 연탄불에 굽지 말고 숯불을 피워서 양념장을 발라가며 반짝반짝 윤기가 나게 구워야 한다는 자세한 설명을 하면서도, 시어머니는 그걸 나에게 가르칠 뜻이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다 손수 하는 게 그렇게 신바람 나 보일 수가 없었다. (p73)

 
 7) <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 (박완서)

그가 보통 때와 다름없이 맛있는 저녁식사에 대한 기대에 한껏 부푼 표정으로 현관에 들어서면 나는 신혼 때처럼 종종걸음으로 그를 마중해 모자 먼저 받아 걸었다. 비록 늙은 얼굴에 걸맞지 않은 갓난아기 같은 민둥머리를 하고 있을망정 그는 매일매일 멋있어졌다. 너무 멋있어 가슴이 울렁거릴 정도로 황홀할 적도 있었다. 일찍이 연애할 때도 신혼 시절에도 느껴보지 못한 느낌이었다. 그건 순전히 살아 있음에 대한 매혹이었다. 그러고 나서 풍성한 식탁에 마주 앉으면 우린 더불어 살아 있음에 대한 안타까운 감사와 사랑으로 내일 걱정을 잊었다. (p93)

 
 8) <해산바가지> (박완서)

내가 첫애를 뱄을 때 시어머님은 해산달을 짚어 보고 섣달이구나, 좋을 때다, 곧 해가 길어지면서 기저귀가 잘 마를 테니, 하시더니 그해 가을 일부러 사람을 시켜 시골에 가서 해산바가지를 구해오게 했다. 
"잘 생기고, 여물게 굳고, 정한 데서 자란 햇바가지여야 하네. 첫 손자 첫 국밥 지을 미역 빨고 쌀 씻을 소중한 바가지니까."

이러면서 후한 값까지 미리 쳐주는 것이었다. 그럴 때의 그분은 너무 경건해 보여 나도 덩달아서 아기를 가졌다는 데 대한 경건한 기쁨을 느꼈었다. (p141)

 
 9)  《나를 닮은 목소리로》 (박완서)

 자식들이 멀쩡한 가구나 가전제품을 바꾸는 걸 예사롭게 보아 넘기지 못하고 먹다 남은 음식을 그 자리에서 쓰레기통에다 버리는 걸 보면 천벌이 내릴 것 같아 기어코 한마디하고 만다. 그래서 아들 며느리한테 구박을 받고 손자들은 아예 상대도 안 하려 든다. (p147)

 
 10) 《한 말씀만 하소서》 (박완서)

아이들이 불러서 베란다로 나가 보니 저녁때인데도 대마도가 ㄸ렷이 보인다. 어제 쾌청한 날에도 안 보이던 대마도가 거짓말처럼 선명하게 나타나 보인다. 우리 눈에 안 보일 때도 대마도는 거기 있었을게 안니가. 그렇다면 보인다고 다 있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감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환상일 것도 같다. 어쩔거나, 이 인생의 덧없음을.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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