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저자: 라우라 에스키벨
출판연도: 1989
주제분류: 고전문학
티타는 요리에 감정을 담을 수 있다. 티타는 음식을 만들며 슬픔을 해소하고 사랑을 표현하며 전통과 맞서 싸운다.
1. 한 권의 요리책 같은 소설
한 권의 요리책 같은 소설입니다. 열두 개의 장에는 각각 일 년 열두 달과 각각 다른 요리 이름이 붙여져 있어요. 각 장은 요리의 재료로 시작하고요. 중남미 요리는 생소한 편이기 때문에 상상하며 읽는 재미가 있었고, 그럼에도 머릿속에 그 음식의 색, 향, 맛을 구체화시키는 데 한계가 있으니 아쉬움도 있었어요.
영화도 있더라고요. 영화를 보고 나면 음식과 스토리를 더 연결지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소설에서 음식은 티타가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이고 관습을 깨기 위해 싸우기 위한 수단이잖아요.
또 부엌의 풍경과 부엌에서 티타의 모습이 굉장히 역동적으로 묘사되어요. 이러한 면에서 영화가 더욱 궁금했어요.
어느 날 티타는 뜨겁게 달궈진 질냄비 위로 현란하게 춤을 추며 떨어지는 물방울이 얼마나 놀라운 장관을 연출하는지를 언니들에게 보여주기로 했다. (p14)
냄비 부딪히는 소리, 질냄비 위에서 노르스름하게 익어가는 아몬드 냄새, 요리하면서 흥얼거리는 티타의 달콤한 목소리가 페드로의 성적 본능을 자극했던 것이다. (p74)
음식을 통해 감정을 느낀다는 점에서 「레몬 케이크의 특별한 슬픔」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2. 과거의 관습과 여성의 삶
과거 부당한 관습과 여성이 자유롭게 사랑하지 못했던 것은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났던 일은 아니군요. 소설을 읽는 내내 '막내딸은 죽을 때까지 어머니를 돌봐야 한다.'라는 관습이 얼마나 부당하게 느껴지던지요. 또 마마 엘레나를 위해 사랑을 포기하고 마마 엘레나가 죽고 난 후에 조차 마마 엘레나의 혼령에게 얽매어 사는 티타의 삶이 어찌나 안타깝던지요. 하지만 소설 중반쯤 알 수 있듯이, 티타가 과거 어머니의 일화를 알고 마마 엘레나를 이해했듯이, 마마 엘레나 역시 사회 분위기로 좌절된 사랑을 겪었죠. 로사우라 역시 관습의 피해자이자, 그럼에도 그저 관습에 순응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티타와 헤르트루디스가 대단해 보였습니다. 같은 기질이 있어 티타도 헤르트루디스와 잘 통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요.
3. 티타에게 찾아온 두 명의 남자, 다른 종류의 두 사랑
티타에게 두 명의 남자, 다른 종류의 두 사랑이 찾아옵니다. 한 명은 페드로입니다. 운명적인 사랑이자 열정적인 사랑. 또 한 명은 존입니다. 상대에게 헌신적인 사람이고 같이 있으면 편안한 사람이죠. 저는 티타와 존의 사랑을 응원했고 실제로도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힘들 때 옆에 있어주는 것, 상대를 믿어주는 것만큼 사랑에서 중요한 것도, 그러나 그만큼 어려운 것도 없으니까요.
페드로와의 운명적인 사랑도 좋지만(사랑은 생각하는 게 아닌 느낌으로 오는 것이라는 말이 좋았아요.), 페드로는 너무나도 겁쟁이이니까요. 맞서 싸울 용기가 없다면 로사우라와 결혼하지 않고 티타를 떠났어야죠. 관점에 따라서 생각이 갈릴 수 있는 지점인 것 같아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
사랑은 생각하는 게 아니에요. 느낌으로 오는 거지요. 나는 말이 없는 편이지만 내가 한 말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입니다. 영원히 당신만을 사랑하겠다고 맹세합니다. 당신은, 당신도 나를 사랑하나요? (p27, 페드로의 말)
티타, 당신이 뭘 했든 나는 상관없어요. 본질적인 게 바뀌지 않았다면 살면서 어떤 행동을 하든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내 생각은 당신이 한 말에 조금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당신 인생의 동반자가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인생의 동반자가 될 남자가 나인지 아닌지는 잘 생각해 봐요. 당신의 대답이 긍정적이라면 며칠 내로 결혼식을 올립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내가 제일 먼저 페드로에게 축하인사를 건네고 당신을 잘 보살펴 달라고 부탁할 거에요. (p233, 존의 말)
티타는 페드로가 키스했을 때처럼 강렬한 느낌은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오랜 세월 습기에 젖어 있던 자신의 영혼이 너무나도 멋지고 착한 이 남자의 곁에서 조금씩 조금씩 불타오를 수 있기를 바랐다. (p137)
4. 놀라움의 연속이었던 전개
라우라 에스키벨 작가의 독특한 스타일인지, 중남미 문학의 스타일인지 모르겠으나 이전에는 잘 접해보지 못한 파격적인 전개가 많다고 느꼈어요.
- 사랑하는 티타와 결혼하지 못하자 그녀와 한 집에 있기 위해 티타의 언니 로사우라와 결혼하는 페드로.
- 헤르트루디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에 샤워장 나무판자에 불이 붙었다거나 그때 헤르트루디스의 모메서 뿜어져 나온 장미 향이 혁명군 장교에게 까지 퍼져 나갔다는 장면.
- 마마 엘레나의 혼령이 사라지자 티타의 생리가 시작된 것.
등등.
또 충격과 슬픔으로 사람들이 자꾸 죽었어요.
- 헤르트루디스가 자신의 딸이 아닌 호세의 딸이라는 것을 알고 심장마비로 죽은 후안.
- 티타가 만든 웨딩 케이크의 크림을 먹고 그리움을 느끼고 죽은 나차.
- 마마 엘레나의 죽음.
- 악취와 함께 죽은 로사우라.
- 강렬한 흥분을 느껴 죽은 페드로.
환상적인 요소들도 많이 등장했어요.
장밋빛 구름이 주위로 몰려와 그의 몸을 휘감자 잠시 후 그는 마마 엘레나의 농장 쪽을 향해 전속력으로 말을 몰기 시작했다. (p62)
아주 강렬한 흥분을 느껴서 우리 몸 안에 있던 성냥들이 모두 한꺼번에 타오르면 강렬한 광채가 일면서 평소 우리가 볼 수 있었던 것, 그 이상이 보이게 될 겁니다. 우리가 태어나면서 잊어버렸던 길과 연결된 찬란한 터널이 우리 눈앞에 펼쳐질 거고요. 그곳은 우리가 잃어버린 신성한 근본을 다시 찾으라고 손짓할 겁니다. 영혼은 축 늘어진 육체를 남겨운 채 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하 테고요......" (p256)
이러한 부분들이 생소하고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으나, 그래서 더 호기심을 느끼고 흥미진진하게 소설을 단숨에 읽어나간 것 같아요.
5. 이외에 기억에 남는 구절들
냄새는 기억 속의 소리와 향을 전하며 과거의 어떤 시간을 떠오르게 하는 특성을 지녔다. 티타는 냄새를 흠뻑 들이마시며 그 각별한 냄새나 향과 함께 자신의 추억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걸 좋아했다. (p16)
역사는 대개 이렇게 써진다. 목격한 증인들의 진술로 이루어지지만 그 진술이 늘 사실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p63)
빌어먹을 체면! 빌어먹을 에의범절! 그것들 때문에 그녀의 몸은 속수무책으로 조금씩 시들어 가야만 하는 운명이었다.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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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2 - [분류 전체보기] - [독서장소] 알로소 윈터리빙룸: 독서러에게 꿈의 공간 같은 곳, 예약 팁